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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새해는 12월에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1월부터 이어지는 평가 시즌을 지나고 나서 연말 휴가만 손꼽아 기다리다 보면, 곧이어 인사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복도에서 삼삼오오 모여 "누가 바뀐대. 팀이 합쳐진대" 이런저런 소문을 귓동냥하다보면, 인사시즌이 다가왔구나 하고 새삼 실감하게 되어버린다.

 

인사 소문이라는게, 내 일이 아니면 그보다 즐거울 순 없다. 하지만 내가 속한 조직이 어떻게 된다 라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 스스로도 어디에 줄을 서야 하나, 내 처신은 어떻게 되는 건가 걱정만 한가득 쌓이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승승장구' 기쁨을 누리는 시즌.

또 누군가는 '나는 계륵같은 존재인가?' 자문자답하며,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악마의 시즌이다.

 

매년 돌아오는 때이고, 이직하고 5년째 맞이하는 인사시즌이지만, 되돌아보면 한번도 모두가 해피하게 맞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올해도 마찬가지로, 연례행사인 눈치게임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 마주한 그 결과는 다소 놀라웠고, 발표 직후 복도는 그날 업무를 포기한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더란다.

 

그리고 조직개편이 끝나고 첫날인 오늘은 그 조직개편 이후 혼이나갈 속도로 조직이 재정비되는 것을 목격했다. 어디서는 인수인계가 진행되었으며, 업무 보고를 벌써 진행한 팀도 있었다. 작금의 상황에서 묵힐 대로 묵혀진, 구석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있던 문제점과 이를 타개할 방안, 새로운 비전에 대한 치열한 고민들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때 주변 모든 사람들은 힘듦, 슬픔, 아쉬움, 미련 따위의 감정은 숨겨두고 하루빨리 조직이 안정화되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내가 속한 조직에 문제가 없다는데서 발생하는 안도감. 그리고 나의 거취조차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데에 대한 두려움. 모두 생각할 필요가 없어질 때, 그때 비로소 다시 삼삼오오 모여 커피 한잔 하면서, 새로운 조직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이 오면, 불과 며칠전까지 함께했던 동료가 다른 조직에 속해 있더라도, 나 스스로가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그 안정감에 오히려 도취되고 만다.


매년 되풀이되는 이 눈치게임에서 나는 반드시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올해 초, 시무식이 있던 무렵 팀장님이 불러 이렇게 이야기했다. "ㅇㅇ씨, 승격 점수가 조금 모자라.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내년에는 승진 대상자가 될 수 있을 거야." 그걸 들은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개뿔.. 놀고먹어도 채우는 승격 점수인데 고과 좀 배려해줬으면 이번해에 승진할 수 있었을 텐데.'

 

승진과 연봉 상승. 직장인에게는 이 두가지가 직장생활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 전 직장상사는, 입사하고 어리버리하던 나에게 "여기는 정글이야. 혼자 살아남아야 해."라고 주입식 교육을 시켰더랬다. 이러한 정글 같은 환경에서 승진이란, 곧 인정받는다는 의미이며, 상대적인 우월감에 자존심을 지킬 수 있고, 더불어 연봉으로 보상받는 어마어마한 도구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까지 그것에 둔하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로는 계산까지 끝내버린 속물이었다고 자각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직까지 밖으로 티를 내진 않지만. 쿨하게.

 

결국, 길고 긴 직장인이라는 레이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인내심도 가져야 할 뿐더러, 내 페이스도 찾아야 한다. 평정하기 위한 평정심도 필요하다. 단기적인 성패에 휘둘리지 않는, 어리석은 싸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깨닫고 통달한 사람처럼 이야기해놓고, 당장 다가올 내일의 고과 면담을 앞둔 나는 톡 대면 바스러질 모래성처럼 위태로운 상태임은 분명하다.


결국 오늘의 주저리 - 내년도 이 맘쯤에는, 조직의 소문을 궁금해 하는게 아닌, 나만의 화두가 무엇인지, 나 스스로에게 궁금증을 더 던질 수 있는 내실을 다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하지만 소문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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